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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의 삶

작곡가 윤이상
  • 생애
  • 내 고향 통영
  • 생가터
  • 윤이상 기념관
  • 독일에서의 발자취
  • 윤이상 음악당
윤이상 이미지 3개

1969년 3월 독일로 돌아온 윤이상은 1971년 독일 국적을 취득하고 망명자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하노버 음악대학에 출강하며(1969-70) 백병동, 강석희, 김정길, 최인찬에게 작곡을 가르친다. (이들은 윤이상의 유일한 한국의 제자들로서 귀국 후 한국의 현대 음악계를 주도하며 많은 작곡가들을 배출시킨다.)

1972년에 자신이 졸업한 베를린 음악대학의 명예교수가 되고, 1977년부터 정교수로 재직하며 많은 국제적인 제자들을 길러내고 1985년 정년퇴직한다.

한편 평양에 '윤이상음악연구소'가 설립된 1984년부터 북한음악계의 질적 향상을 위하여 강의하며 악기연주기법을 지도하고 유럽의 고전 · 현대음악의 악보 및 CD 등을 지원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헌신한다. 또한 북한연주단의 국제적인교류를 위하여도 정력을 쏟는다.

그의 노력으로 북한의 국립교향악단은 1986년 폴란드의 바르샤바 현대음악축제에 윤이상의 작품을 포함한 프로그램으로 참가하여 성공적인 순회공연을 하였고, 이 후 다른 나라에서의 초청도 잇따르게 된다.

윤이상 이미지

1972년 윤이상은 뭰헨 올림픽대회의 문화행사를 위해 위촉 받은 그의 오페라 <심청(1971/72)>의 성공으로 한국의 문화를 전 세계인에게 알림과 동시에 세계적인 찬사를 받는다.

이후 그의 창작세계는 겉으로는 점점 독일 음악의 전통에 동화되어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더욱 더 자신의 생득적 토대를 드러내는 모순적 방법을 취한다. 그는 '동베를린사건'에서 겪은 자신의 인간적, 정치적 체험을 보편화시켜 보다 높은 인간성을 추구하며, 이러한 주제들을 그의 작품을 통해 형상화시키는데 주력한다.

그의 <첼로 협주곡(1975/76)>으로 시작되는 일련의 협주곡들과 1980년대의 5개의 교향곡 등은 전 인류를 향해 이러한 그의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고 있는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윤이상 이미지 3개

교육과 왕성한 작품 활동 가운데서도 윤이상은 1973년 한국정부의 김대중 납치사건을 계기로 해외 민주화운동에 투신한다. 그는 '한민련(해외한국인민주통일연합)' 유럽본부 의장, '법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 해외본부 의장 등을 맡으며 생을 마감할 때까지 적극적으로 한국의 민주화와 민족통일을 위해 자신의 삶을 헌신한다.

또한 1988년 휴전선상에서의 민족합동음악축전' 을 남북한 정부에 제안하여 음악을 통해 분단된 민족의 화해를 끌어내려 노력했으며, 그 결과 1990년 분단 45 년 만에 처음으로 남북한 음악인들이 함께하는 역사적인 '법민족음악회(1990년 3월, 평양)' 와 '90년 송년통일전통음악회(1990년 12월, 서울)' 가 성사된다.

윤이상은 함부르크 자유예술원(Freie A kademie der Kunste Hamburg)과 베를린 예술원(Akademie der Kunste berlin)의 회원 및 국제현대음악협회(GNM)의 명예회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Academia Scientiarum et Artium Europaea 회원이었으며(1994), 독일 킬(Kiel) 시(市)가 수여하는 '킬 문화상' 을 수상했고(1971),튀빙겐(Tubingen) 대학에서 명예철학박사 학위를수여 받았다. (1985). 1987년 리하르트 폰 바이체커(Richard von Weizacker) 대통령으로부터 '독일연방공화국 대공로훈장(Groβes Bundesverdienstkreuz)'을 수여받은 그는 함부르크 자유예술원(Freie Akademia der Kunste Hamburg)의 'Thomas-Mann-Plakette'(1992) 및 '괴테-메달'(1995)을 수상했다. 그의 사후인 1996년, 윤이상은 늦봄 문익환 목사 추모사업의 하나로 제정된 제1회 '늦봄통일상' 수장자로 선정되었다.

윤이상은 1995년 11월 3일 베를린에서 78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하고, 그가 반평생을 살았던 그 곳에 묻혀있다. 우주의 영원한평화가 이 세계에 실현되는 것, 순수성과 인간성의 회복, 그것이 바로 그의 삶과 음악이 추구했던 이상향이다.

TONGYEONG INTERNATIONAL MUSIC FESTIVAL 통영국제음악제 20143.28 ~ 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