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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의 삶

작곡가 윤이상
  • 생애
  • 내 고향 통영
  • 생가터
  • 윤이상 기념관
  • 독일에서의 발자취
  • 윤이상 음악당
"정윤주, 최갑생, 최성천과 함께 '통영현악 사중주단'을 조직, 8월에 서베를린으로 건너가
베를린음악대학에 입학."
"라인하르트 쉬바르츠 쉴링(Reinhard Schwars-Schilling)에게서 음악이른을
쇤베르크의 제자인 요셉 루퍼(Joseph Rufer)에게 12음 기법을 그리고
보리스 블라허(Boris Blacher)에게서 작곡을 배움"
윤이상 이미지

3년의 유학계획을 세우고 1956년 6월 파리에 도착한 윤이상은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에서 피에르 르벨(Pierre Revel)에게서 음악이론을, 토니 오뱅(Tony Aubin)에게서 작곡을 공부한다. 유럽에서 최신의 작곡기법을 배우기 원했던 그는 그러나 파리의 보수적인 음악 전통과, 작곡가들의 작품에서 이질감을 느끼며 방황한다.

그는 1957년 8월 독일 (서)세를린 음악대학으로 옮기고, 라인하르 슈바르츠-쉴링 (Reinhard Schwarz-Schilling)에게서 음악이론(대위법과 푸가)을, 쇤베르크(Arnold Schoenberg)의 제자인 요세프 루퍼 (Josef Rufer)에게서 빈 학파의 12음기법을, 보리스 블라허(Boris Blacher)에게서 작곡을 공부한다. 또한 그는 당시 유럽 현대음악의 메카인 독일 다름슈타트 국제하기강습회(Darmstadter Ferienkurse)에 1958년부터 매년 정기적으로 참가하며 유럽 아방가르드 작곡가들(슈톡하우젠, 노노, 불레즈, 마데르나, 케이지리게티, 펜데레츠키, K. 후버, 카스틸리오니, 체르하 등)과 활발하게 교류한다.

윤이상은 그들의 실험적이고 다채로운 방향의 작품에서 매혹과 충격을 동시에 느끼며, 모든 가능성들에 대해 자유롭게 열려있는 현대음악의 조류속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독창성을 보장해줄 음악언어를 찾아간다.

윤이상 이미지

1959년 9월 그의 유럽에서의 첫 작품인 < 피아노를 위한 다섯 개의 소품(Funf Stuckefur Klavier, 1958)><일곱 악기를 위함 음악(Musik fur sieben Instrumente, 1959)> 이 각각 네덜란드 빌트호벤(Bilthoven)과 독일 다름슈타트에서 성공적으로 초연되어 윤이상은 유럽 현대음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이미 그 해 7월에 베를린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귀국을 준비해 놓은 그는 이 작품들의 예기치 않은 성공을 계기로 독일에 좀 더 머물며 작곡가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유럽무대에서 확고히 할 결심을 한다.

프라이부르크(Freiburg, 1960)와 쾰른(Koln, 1963)을 거쳐 윤이상은 1964년 미국 포드재단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서)베를린에 정착하게 된다. 그 사이 부인 이수자 여사가 1961년 독일로 오고, 두 자녀들도 1964년 베를린으로 오게 되어, 가족이 모두 8년 만에 다시 한자리에 모이게 된다.

그는 1966년 10월 국제적인 음악제인 독일 도나우에싱엔(Donaueshingen) 음악제에서 초연된 관연악곡 <예약(Reak, 1966)>의 큰 성공으로 국제적인 작곡가로서 자리매김하게 된다.

윤이상 이미지 4개

윤이상은 아직까지도 그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소위 '동베를린 간첩단사건' 에 연루되어 한국 중앙정보부원들에 의해 베를린에서 서울로 납치된다. 부인과 함께 간첩혐의로 기소되어 지독한 고문을 받고, 제1심에서 종신형을 선고 받는다. 부인은 5년형을 받았으나 집행유예로 석방된다.
윤이상은 제2심에서 15년형을, 제3심에서 10 년형을 선고 받지만, 독일의 그의 친구들과 국제적인 예술인, 지식인들의 적극적인항의 및 독일정부의 조력 등에 힘입어 1969년 2월 25일 대통령 특사의 형식으로 석방된다.

서울에서의 구금생활동안 윤이상은 작곡을 허락 받아 세 개의 작품을 쓴다. 희극적인 오페라 < 나비의 미망인(Die itwe des Schmetterlings, 1967/68)>, <율(Riul fur Klarinette und Klavier, 1968)>, <영상(Images fur Flote, Oboe, Violine und Violoncello, 1968)>이 죽을지도 살지도 모르는 인간의 극한 상황 속에서 쓰인 그의 작품들이다.

특히 <영상>은 북한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벽화 <사신도>를 직접 보고 영감을 얻어 쓴 작품으로서, 그는 이 예술작품을 보기 위하여 1963년 북한을 여행했고, 이 북한여행이 바로 그의 간첩혐의를 초래케 한 것이다. 몸은 가둘 수 있지만, 인간의 영혼과 정신은 가둘 수 없다는 것을 윤이상은 음악을 창조함으로 보여주고 있다.

TONGYEONG INTERNATIONAL MUSIC FESTIVAL 통영국제음악제 20143.28 ~ 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