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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의 삶

작곡가 윤이상
  • 생애
  • 내 고향 통영
  • 생가터
  • 윤이상 기념관
  • 독일에서의 발자취
  • 윤이상 음악당
"통영의 여자고등학교 음악교사로 제직"
"해방 후 통영여고시절까지 유치환, 김상옥 등과 함께 통영여고, 욕지중교 외에
다수의 초등학교 교가를 작곡함"

해방 후 고향으로 돌아온 윤이상은 통영의 문화 예술인들(시 인 유치환, 김춘수, 김상옥, 작곡가 정윤주 등)과 함께 민족문화 창출을 목적으로 '통영문화협회' 를 설립하고, 음악부문을 주도해 나간다.

이 기간 동안 윤이상은 통영의 거의 모든 학교의 교가를 작곡한다. 그러다가 일본에서 부산으로 몰려드는 전쟁고아들에 대한 얘기를 듣고 부산시립고아원의 소장이 되어 이들을 교육하고 보살핀다.

1948년 통영여자고등학교 음악교사가 되고, 얼마 되지 않아 부산사범학교로 옮긴다. 그는 음악을 가르치고 가곡과 현악4중주 등을 작곡하면서 활발한 음악활동을 전개하며, 1949년에는 다섯 개의 가곡을 한데 묶은 초기 가곡집 「달무리」를 부산에서 출판한다.

윤이상 이미지 4개

윤이상은 같은 학교 국어교사인 이수자(李水子 1927-)와 1950년 1월 30일 결혼한다. 얼마 되지 않아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그 해 11월 첫 딸 정이 출생한다.

1950년에 부산에서 조직된 '전시작곡가협회' 에 가입하여 활동하고, 1951년 부산고등학교에서 음악교사를 지내다가 1953년 휴전협정 후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주한다.

윤이상 이미지 3개

1956년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 3년간의 서울생활시기에 서울대학교 예술학부와 덕성여대 등을 출강하며 작곡과 음악이론을 가르치고 작품과 평론을 활발하게 발표하며 한국음악계에 작곡가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확고하게 한다.

1954년 '전시작곡가협회' 가 '한국작곡가협회' 로 서울에서 새로이 발족했고, 윤이상은 이 협회의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며 한국 음악계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간다.

1954년에 발표한 윤이상의 글 「악계구상의 제 문제」 는 당시 한국 음악계의 당면 문제와 '한국음악의 수립'이라는 명제를 위해 악계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글로서, 윤이상의 작곡 작업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지표가 된다.

1956년 4월 윤이상은 「현악4중주 1번」「 피아노 트리오」로 '제5회 서울시 문화상' 을 수상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그는 당시
한국에서 습득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20세기 작곡기법과 음악이론을 공부하기 위하여 유럽유학을 결심한다.

그는 1956년 6월 불혹을 앞둔 39세의 나이에 동료 및 선, 후배 음악가들의 따뜻한 격려 속에서 프랑스 파리로 떠났다. 이 길이 그는 다시는 고향을 볼 수 없는 길임을 그 누구도 예감하지 못했다.

TONGYEONG INTERNATIONAL MUSIC FESTIVAL 통영국제음악제 20143.28 ~ 4.3